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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론 주제 : 죽음

벌써 이 저택을 나가지 못한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지.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은 날짜를 세볼까 고민하다가 날짜를 세는 것에 하등 좋을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기로 했다. 실제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쁠 것이라면 모를까. 라이오넬이 이 저택을 나가지 못했다는 것은 눈과 같은 물리적인 이유에 의해 저택이 고립되어 실제로 나갈 수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나갈 수 없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원인은 한 남자에게 있었다.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은 자신이 나가지 못한 원인을 힐끗 눈에 담았다. 완연한 병자의 안색이 눈에 들어왔다. 흐트러진 흑색 머리칼과 꼭 감은 눈꺼풀. 한없이 처연해 보이는 남작, 알버트 알로이스 윌프레드였다. 그는 원래도 병약해서 아파 보이는 상이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죽었다 살아난 사람의 얼굴이었다. 피부의 색이라곤 물에 씻겨 빠져나간 듯 창백했고 팔이나 다리는 축 늘어진 채였다. 그는 미약하게 숨을 쉬고는 있었지만 때때로 그마저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처럼 콜록거렸다.

이런데 어떻게 나갈 수가 있겠어. 라이오넬은 그렇게 생각하며 호흡만 겨우 하는 알버트의 머리칼을 살짝 손으로 쓸었다. 밤중 앓았던 흔적으로 땀에 젖은 머리칼을 넘긴 후에 라이오넬은 그저 알버트를 한참 눈에 담았다. 이렇게 의식을 잃은 알버트를 혼자 바라보는 것도 벌써 몇 번째였다. 라이오넬은 그 사실을 떠올리다가 그저 눈을 꾹 감았다.

 

단순히 어제 알버트가 운이 나빴기 때문에 알버트가 앓은 것이 아니었다. 라이오넬은 그렇게 생각하며 근래 있던 일을 떠올렸다. 최근 알버트는 지나치게 자주 앓았다. 잠깐 열이 오른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거나 하는 일은 알버트가 특별히 아프지 않아도 그의 체력상 자주 있는 일이긴 했지만 최근에 있던 것은 그런 소소한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병증이었다. 알버트 알로이스 윌프레드는 근래에 정말 ‘죽을 것처럼’ 앓았다. 호흡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을 라이오넬이 겨우 발견해 숨을 쉴 수 있게끔 조치하거나, 우연히 시중을 들러 들어온 하녀가 그 주인이 의식을 잃고 거의 시체처럼 늘어진 것을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는 일이 잦았다.

잠시 아프고 나으면 괜찮은 상황이 아니었다. 하루 걸러서 하루가 아팠고 그나마 잠시 앓지 않으면 그것이 행운일 정도였다. 이제는 알버트가 운이 나빠서 앓는 것이 아니고, 앓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앓지 않으면 운이 좋은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그래서 라이오넬은 저택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찰나의 공백이 알버트 윌프레드의 생명을 완전히 앗아가게 될까 봐. 늘 청진기로 들었던 미약하던 고동이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멈추는 일이 일어나게 될까 봐 라이오넬은 자신의 의지로 저택을 나서지 않았다.

 

이틀 전쯤에는 저택에서 영 벗어나지 않는 라이오넬이 걱정이 되었던 것인지 알버트가 말을 하기도 했었다.

 

“난 괜찮아.”

“…….”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라이오넬. 계속 여기에 있지 않아도 돼.”

 

알버트는 그때 꼭 라이오넬을 어르는 연장자처럼 말했었다. 진정하지 못하는 아이를 달래는 선생의 목소리가 이랬었나. 기숙학교 시절 들었던 교사진의 목소리와 얼핏 비슷한 것도 같았다. 그러나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은 그 다정한 목소리에 꼭 반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소리로 흐를 것 같았던 조소를 억누른 것이 그의 한계였다. 우습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하고 있군. 라이오넬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당시의 알버트를 눈에 담았었다. 그때 알버트는 어땠지. 창백했고 병색이 완연한 얼굴에 생기가 없었으며……. 라이오넬은 무겁게 감았던 눈을 떠서 알버트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 얼굴이었다. 지금과 다를 바 없었던 얼굴로 그는 자신을 마주했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았던 그 연약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알버트에게 그때의 나는 말했었다.

 

“너 어제도 발작을 일으켰던 건 기억하고 하는 말이냐?”

네가 내 걱정을 할 처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그렇게 말했었다.

 

“…….”

“네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었는데 듣지도 못하는 것 같았고.”

“그건…….”

 

너 거의 죽을 뻔했어. 그리고 그게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잖아.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은 그 말을 꾹 삼키고는 입술을 물었다. 그런 주제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 정말 걱정을 놓을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라이오넬은 굳이 그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입술을 짓이겼다. 입술을 물지 않으면 소리가 샐 것 같았는데 샐 소리가 말소리가 아니라 흐느낌에 가까운 무엇인가일 것 같아서 그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행인지 혹은 불행인지 알버트는 그이상 라이오넬을 달래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살짝 눈을 감았었다. 그마저도 꼭 영원히 잠이 들 것만 같아서 라이오넬은 알버트의 이름을 부를 뻔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이 잠에 빠질 알버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그가 먼저 말했었다.

 

“나는 네가 걱정 돼…….”

알버트 윌프레드는 그 말 뒤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라이오넬은 알버트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굳이 묻지 않았고 알버트는 굳이 그 다음을 이어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눈을 떠서 덤덤한 톤으로 시답잖은 얘기를 했을 뿐이다.

 

“……아무래도 나가지 않고 오래 머물 거면 집세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하고. 전혀 마음이 담기지 않은 너스레에 라이오넬은 그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게 그렇게 신경 쓰이면 네가 오래 살아서 직접 받아내도록 해. 몇 년 치를 한 번에 청구 받아도 기꺼이 지불하도록 하지.”

알버트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었다.

유감스럽게도 그가 짓는 웃음마저 희미해서 라이오넬은 당장에라도 눈앞 남자의 상이 흩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 대화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이런 꼴이군. 라이오넬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 알버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네 말은 전부 틀렸다고. 그때 내가 네 말을 따라서 저택을 나섰으면 네가 숨을 쉴 수나 있었을 것 같으냐고. 네 목숨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거거나 자신을 과신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흡사 책망하는 것 같은 소리가 먼저 머리를 스쳤다. 의사로서의 충고를 한바탕 쏟아내면 알버트는 목을 움츠리곤 움찔거리거나 아니면 지나친 잔소리에 한숨을 푹푹 내쉬겠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반응이 선할 만큼 익숙하고도 평범한 대화였다.

라이오넬은 문득 그것이 평범한 대화라는 것에 부정할 수 없는 지점을 마주했다. 대부분 사람은 일상적인 얘기를 이제 와서 굳이 특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범주에 넣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나면 속에 품어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소진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하고 혹자가 물어본다면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라이오넬이 품은 것은 그보다 깊은 것이었고 떠올린 것은 하고 싶은 말 중에서도 할 수 있는 말에 해당하는 지극히 적은 부분의 이야기였다.

그래, 나는 좀 더 많은 얘기를 담고 있었다. 라이오넬은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 어쩌면 알버트 윌프레드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라이오넬은 알버트가 눈을 감고 시선이 닿지 않을 때면 그나마 솔직할 수 있었다. 그 푸른빛이 도는 눈이 자신을 마주하지 않으면 나약한 것을 꺼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유에서든 라이오넬은 자신이 차마 소리로 내뱉을 수 없을 속내를 떠올렸다.

 

알버트 윌프레드. 그렇게 죽음을 직감한 것처럼 굴지 마. 죽음에 순응하는 것처럼 굴지 마. 꼭 남겨질 사람을 걱정하는 것처럼 나를 걱정한다는 말 따위를 굳이 남기지 마. 그게 당연한 것처럼 덤덤히 받아들이지 마. 나는 네가, 조금 더…….

라이오넬의 상념은 그곳에서 멈추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이오넬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알버트의 시선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면 시선이 닿은 순간 입을 다물어야 했으니까.

 

어느새 꼭 감겨서 두 번 다시 뜨이지 않을 것 같았던 알버트 윌프레드의 두 눈이 라이오넬을 마주하고 있었다.

 

“라이오넬……?”

“…….”

 

알버트 윌프레드는 꼭 꿈을 거니는 것처럼 붕 뜬 목소리로 라이오넬을 찾았다. 수분을 머금지 않은 목소리가 다소 퍽퍽하게 들렸지만 라이오넬은 그의 목소리가 마른 것보다는 꼭 다른 세계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굳이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뱉어내고 싶었던 말할 수 없는 것을 입안에서 녹여 삼키기에도 여념이 없었다. 다행히 그가 말을 부수어 뭉개기 전에 알버트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알버트는 거의 반사적으로 라이오넬의 이름을 부른 후에 한참을 침묵했다. 실은 라이오넬이 보여서 그의 이름을 불렀던 것은 아니었다. 깨어 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머리는 멍했고 심장은 여전히 불안하게 뛰었으며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몸에 열이 오르는 것도 같았다. 무언가를 정상적으로 판단하고 그 감각을 믿기에는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알버트는 그때 자신의 방인지조차 낯선 이 공간에 있는 이가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이라고 확신하고 말을 뱉을 수 있었다. 시야로 보고 판단하기에는 부옇던 시야였다. 알버트는 그때 라이오넬의 얼굴을 채 보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그때 알버트는 라이오넬의 이름을 불렀다.

그럴 수밖에. 알버트는 슬슬 개이기 시작하는 시야에 살짝 눈을 굴려 라이오넬을 눈에 담았다. 힐끔 건넨 시선으로 겨우 볼 수 있었던 라이오넬의 표정은 알버트 윌프레드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몇 번의 죽음의 고비를 건널 때마다 그가 지었던 표정이었다. 그것을 슬픔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비틀려 있었고, 분노라고 표현하기에는 잔잔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아니라고 표현하기에는 감정이 깊었다. 어떤 것도 결국 담지 못한 무표정한 얼굴. 그것은 알버트에게 지나치게 익숙한 것이었다.

표정을 관리하고 남을 구슬리는 게 특기인 주제에. 알버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라이오넬을 바라보다가 쓰게 웃었다. 죽음에 누구보다 가까운 직업을 가진 주제에 그렇게 불안한 표정을 지으니까 걱정할 수밖에 없잖아……. 알버트 윌프레드는 속으로 읊은 그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은 농담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버트 윌프레드는 그가 크게 앓기 전부터 자신이 죽음을 앞두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근처를 슬금슬금 죽음의 기운은 돌았지만 최근에 와서 죽음이라는 것은 거의 이를 드러내고 알버트를 먹어 치울 것처럼 굴었다. 그것은 꼭 알버트가 살아온 모든 기간 인내했던 것을 이제야 앞둔 사람처럼 조급하게 그를 흔들었다. 병에 대해서는 라이오넬이 알버트의 몇 배를 더 잘 알겠지만 죽음의 기운에 대해서는 알버트가 훨씬 익숙한 법이었다. 알버트는 그는 지나치게 많은 죽음을 보아왔다. 죽음의 기운을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하긴, 오래 참긴 했지. 자신을 몇 번이고 먹어치웠던 게 몇 해 전이니. 알버트는 문득 그렇게 생각하다가 지나치게 익숙한 죽음들 가운데서 저택에 내려앉았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알버트는 힐끗 창문을 눈에 담았다. 커튼으로 쳐진 창문은 건너편이 보이지 않았지만 알버트는 꼭 그 건너에 눈이 내리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하얗게 내린 눈이 온 천지를 덮어서 이 저택에 사람들을 가두고……. 라이오넬이 들으면 소설이 따로 없다고 핀잔을 하겠군. 알버트는 그렇게 생각하곤 픽 웃었다가도 끊이지 않은 사고의 흐름을 따랐다.

몇 해 전이었다, 자신의 생일을 맞은 연회를 열고자 했던 것이. 그리고 그 연회를 위해 모였던 손님과 자신이 몇 번이고 죽으며 저택에 피를 먹였던 것이. 알버트는 몇 번이고 죽었던 그 겨울을 떠올렸다. 머리를 뚫던 총알의 감각이 퍽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같아서 잠시간 손을 떨었다가 꾹 쥐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알버트는 약간 상념에 젖은 것 기분으로 그때를 떠올렸다. 그때 자신은 몇 번이고 죽었고 몇 번이고 살아났다. 계기나 상황에 대해서 세세하게 떠올릴 수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이제 과거에 불과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알버트는 굳이 그 낡아빠진 참극을 꺼내려 들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만 기억하는 참극이기도 했지. 알버트는 아주 운이 좋게 참극의 끝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얻어서 살아남은 자신을 떠올렸다.

자신이 죽음이라는 존재였다면 이미 수도 없이 먹어치운 기억이 있는 먹잇감이 살아남은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잠시간 들었지만 그는 그 생각을 지웠다.

 

중요한 건 그따위 것이 아니지.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겪을 수 없는 것을 겪고 죽음을 넘어선 자신은 그 뒤에 살아남으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말하면 라이오넬은 되바라진 놈이라고 혀를 찰 터이지만 주치의의 신분으로 그가 얼마나 말을 하든 듣지 않았던 것들을 챙겼었다. 걷지 않았던 몸을 손수 움직이기 시작했고, 햇볕을 쬐고……. 알버트는 그런 가운데서 만났던 인연들을 생각했다. 이제는 앙금이 남아있지 않은 옛 연인과, 자신의 이름을 닮은 작은 아이와, 또……. 알버트는 잠시 라이오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라이오넬을 얻었었지. 내내 얘기하지 못해서 쌓였던 앙금이 남았던 친우와 화해를 하고 지금까지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알버트는 그 모든 것이 꽤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노력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살아가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과정을 그는 꽤 사랑했었다.

 

어쩌면 그래서 문제인 건가. 알버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간 숨을 멈추었다. 그 모든 과정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언젠가의 말버릇처럼 여태까지도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늘어놓고 있을 텐데. 어쩌면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죽음에 태연한 척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렇지 않았다.

 

알버트 윌프레드는 이제 와서 뒤늦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알버트는 살고 싶었다. 단조롭게 흐르던 시간들이 사실은 그저 흐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의 시간 사이로 수도 없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인간이 미래를 걸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알버트는 자신의 주변에 두게 된 사람들의 미래를 곁에서 보고 싶었다. 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는 세계는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더 많은 것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버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몇 해를 더 버틴 것만으로도 용한 몸이다. 슬금슬금 무너지던 것이 이제는 끝이 날 때가 진작 되기도 했다. 그것을 아등바등 버텨왔었던 게 지난 몇 해였던 거겠지. 알버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욕심은 이미 충분히 냈다는 것을 알았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죽어도 괜찮다는 것은 단지 비관일 뿐이었으며 거짓에 불과했다. 알버트는 여전히 더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더는 바랄 수 없는 선이 있는 법이었다. 알버트는 그 선에 끌려가기 전에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죽음에 삼켜질 수밖에 없다면…….

 

내려앉은 침묵 사이로 라이오넬이 다가오는 소리가 방안에 옅게 퍼졌다. 알버트 윌프레드는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친우를 바라보았다.

 

“몸은 좀 괜찮아?”

“괜찮다고 하면 믿을 거야?”

“믿겠어?”

 

믿을 소리를 해야지. 라이오넬은 여전히 병색이 완연한 알버트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알버트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여전히 침대 위에 축 늘어진 채로 눈만 겨우 움직여 라이오넬을 바라볼 뿐이었다. 알버트는 라이오넬의 약간 쏘는 듯한 소리에 꼭 바람이 빠진 소리로 살짝 웃다가 말했다.

 

“어차피 대답도 안 믿을 질문을… 왜 한 거야?”

“네가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알아야 했거든.”

 

라이오넬은 별 대수롭지 않게 알버트의 말에 대꾸하고는 알버트를 살짝 바라보았다. 의식은 차렸는데 상태는 여전히 좋아 보이지가 않았다. 언제 다시 의식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여서 라이오넬은 잠시 마른침을 삼키고는 이불을 다시 펴서 알버트에게 덮어주었다. 일단은 재우는 게 낫겠지. 좀 더 상황이…….

알버트 윌프레드는 자신을 향한 걱정의 시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은 밑에 손을 받치고 있으면 애정이 묻어서 번들거릴 것 같았다. 한때는 저 눈을 믿지 못한 적도 있었다. 언젠가 그가 자신을 죽여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는데……. 알버트는 그게 꼭 오랜 과거처럼 느껴져서 괜히 쓰게 웃었다.

 

“라이오넬.”

“왜? 너무 많이 말하지 마. 너 몸도 안 좋은데, 이만…….”

“미안해.”

 

미안해. 너를 믿지 못했던 것도, 내 죽음을 안고 가게 했던 것도, 너를 이번에도 결국 혼자 남겨두게 될 것도.

알버트의 소리에 잠시간 라이오넬이 행동을 멈추고 알버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다소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알버트를 보다가 물었다.

 

“……뭐가.”

“그냥.”

“얼버무리지 마.”

“말을 너무 하지 말라더니 말이 달라졌잖아.”

 

알버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라이오넬이 덮어준 이불을 잠시간 만지작거리다 다시금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언젠가 내리던 눈이 커튼을 걷는 순간 여전히 내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알버트는 때때로 꼭 눈에 갇힌 것처럼 겨울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채 과거와 미련과 죽은 시간만 쌓였던 겨울. 알버트는 그 겨울을 생각하다가 문득 툭 소리를 뱉었다.

 

“…봄에 무슨 꽃이 피더라…….”

알버트 윌프레드는 봄이 보고 싶었다. 과거로 이루어진 죽은 시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알버트에게 봄은 단순히 계절이 아니라 미래였다. 자신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미래. 감히 탐낼 수 없는 그런 미래. 이미 분에 넘치게 손에 넣었으면서도 더 쥐고 싶어지는 것……. 알버트는 잠시간 꼭 눈에 파묻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상념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알버트의 상념을 깬 것은 라이오넬의 목소리였다.

 

“꽃? 관심도 없었잖아? ……보고 싶어?”

“어?”

“아니, 온실에서 정도라면 꺾어다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꽃이 보고 싶었던 건 아닌데. 그것은 단지 은유에 불과했다. 예상치 못한 답에 알버트는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라이오넬을 바라보다가도 꺾은 꽃과 온실에 꼭 언젠가 받았던 노란 꽃이 생각났다. 별것도 아닌 그 꽃다발을 봄이라고 칭하며 건넸던 어떤 소녀가 떠올랐다. 그 봄은 이미 시들어서 버려졌었지…….

알버트는 잠시 입술을 달싹인다. 그 꽃을 받는다고 그게 봄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설령 봄을 알버트는 잠시간 고민하다가 툭 소리를 냈다.

 

그럼 꺾인 꽃 말고, ……살아있는 꽃을 보고 싶으니 온실로 데려다줘. 라고.

 

라이오넬은 주변을 힐끗 눈으로 담았다. 따스한 온도에 여기저기가 유리로 된 형태의 공간은 명백히 알버트의 방이 아니었다.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만 주변을 둘러 보아도 꽃의 내음이 나는 이곳은 알버트가 데려다 달라고 했던 온실이었다.

갑자기 무슨 온실인지. 라이오넬은 몇 번이고 알버트의 말에 ‘너 몸을 무리해서 움직이고 더 앓아누울 생각이야?’라고 물어보면서 타박했지만 알버트는 왜인지 끈질겼다. 움직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제에 왜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데려다주지 않으면 혼자 걸어서 꽃을 봐야겠다고 말하는 통에 알버트를 데리고 온실로 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그대로 두려고 생각했지만 침대에서 버둥거리다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옮겨야 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오기는 했지만 라이오넬은 여전히 썩 내키질 않았다. 알버트 윌프레드는 걷는 도중에도 휘청거렸고 지금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자신이 거의 안아다 옮기다시피 온실로 들어섰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꽃을 꺾어주겠단 말도 하지 말걸. 괜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알버트에게 닿는 몸에 열이 느껴지는 것이 걱정되었다. 온도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 것처럼 축 늘어진 시체로 보이는 것은 그 나름대로 문제였지만 열이 오르는 것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사실 지금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든 전부 좋은 징조가 아닌 것 같지만…….

 

억지를 부린 것은 알고 있는데 그때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것이 꼭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만 같았어. 알버트는 안 된다고 말리는 라이오넬을 우겨서 들어온 이 공간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온실은 어디까지나 만들어진 것이었고 이곳에 들어온다고 봄을 맞을 수 있는 것도 왜 이렇게까지 쥐고 싶었던 건지. 어쩌면 몸에 오르는 열이 사고를 막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원초적인 욕망에만 솔직해져서 그저 살아남고 싶다는 그 바람 하나로 억지를 부리게 되는 거지……. 알버트는 자신이 썩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알버트는 끝끝내 도착한 온실을 눈으로 슬쩍 담았다. 이름도 모를 갖가지 꽃이 눈에 들어왔다. 봄을 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봄에 피는 꽃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온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밝았고 온실 내부는 평온하고 잔잔했다.

이런 곳에서 잠들면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알버트는 잠시간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 뜻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 몸을 애써 가누고자 했다. 성큼 다가왔던 죽음의 기운이 어슬렁거렸다.

 

“정말 꽃이네…… 진짜 봄 같다.”

라이오넬은 알버트가 뱉은 소리에 알버트를 따라 시선을 던졌다. 알버트의 시선 끝에는 웬 노란 꽃이 머물렀다. 저게 봄에 피는 꽃이던가? 그런 의문이 일순간 스쳤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알버트의 목소리에도 점점 열이 차올랐다.

 

“……그래. 이제 봤으니까 돌아가는 건 어때. 너 몸도 안 좋고.”

쉬어야 할 것 같아. 가서 치료도 받아야 하고. 라이오넬은 그런 말을 뱉고자 했지만 라이오넬이 무어라 얘기하기 전에 알버트가 꼭 열에 달은 숨과 함께 끊기는 소리로 웅얼댔다.

 

“봄을 맞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야가 점점 부옇게 번진다. 알버트는 자신이 보고 있던 꽃이 그저 노란 뭉텅이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알버트?”

 

“그런데 눈에 파묻혀서 그럴 수 없을 것 같았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알버트는 당장에라도 눈을 꾹 감고 말 것 같았다.

 

“알버트!”

 

“그래도 사실은 좀 더 살아가고 싶었어…….”

알버트 윌프레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누구에게 하는 말을 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알버트의 목소리가 점점 허공을 뜨는 것처럼 들렸다. 라이오넬은 그것이 꼭 이 공간에 있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어딘가에 속삭이는 것 같아서 퍽 불안함을 느끼고 알버트를 살짝 흔들었다. 알버트는 거부 없이 흔들리다가 그 행동이 멎자 축 늘어졌다. 그는 꼭 마지막 소리를 남기듯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라이오넬. 가장 행복할 때 죽을 수는 없을 것 같아, 죽음을 직감한 순간 더 삶을 추구하면서 후회하게 될 것 같거든…….”

알버트는 그 소리와 함께 숨을 가늘게 뱉다가 아예 의식을 놓은 것처럼 눈을 감았다.

 

알버트는 꿈을 꾸었다. 다시금 맞은 봄에 좀 더 자란 자신의 이름을 닮은 아이와 함께 꽃을 보러 가는 꿈이었다. 그 곁에는 라이오넬이 있었으며 그는 퍽 익숙하게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처럼 굴었다. 그 정도는 이제 익숙하다며 받아내고자 했으나 라이오넬은 그때 인상을 찡그리는 대신 좀 가라앉은 표정을 했다. 알버트는 그것이 자신을 착잡하게 보던 라이오넬의 표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곧 죽을 자신을 염려하는 안타까운 이의…….

 

“……!”

알버트 윌프레드는 숨을 들이 삼키면서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컴컴했다. 아까는 그래도 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온실에서 의식을 잃었던 것은 알았다. 몸이 꼭 떠오르는 것 같다가 그대로 추락해서 축 늘어졌었다. 몸에 한기가 느껴져서 이불을 괜히 꽁꽁 싸맸다.

이건 현실인 걸까? 이렇게 추우니까 현실일지도 모른다. 꿈에서 생생하게 고통을 느낀다는 건 말도 안 되고……. 알버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깼어?”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의 목소리였다. 알버트는 뚝뚝 끊기는 기억 속에도 자신이 라이오넬에게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했었던 그 사실만은 기억해서 말을 한참 골랐다.

 

“너 움직이는 소리 다 들었어.”

“음…….”

 

깨긴 했어. 하지만 언제 다시 의식을 잃을지는 모르지. 알버트는 그 말을 하려다가 괜히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아서 입술을 달싹이곤 그저 이불을 폭 끌어안았다.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어쩌면 열이 올랐던 것은 잠시고 이내 차갑게 식어서 시신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죽음의 기운은 아직 주변을 돌고 있었으며 사실 이 찰나의 생존도 그저 운이 좋아서…….

 

“또 헛생각이나 하고 있군.”

“…….”

“네 표정은 다 보여. 불이 꺼져있든 꺼져있지 않든.”

“거, 짓말…….”

“그래. 거짓말이야. 네가 아무런 말도 안 하니까 말 좀 터볼까 했다.”

 

알버트 윌프레드는 목이 따갑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보이지 않는 라이오넬의 표정에 애써 시선을 맞추고자 눈을 굴려 라이오넬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무슨 표정을 짓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 온실에서 했던 얘기 말인데.”

“…윽.”

 

좀 더 의식을 잃었던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알버트는 잠시 생각했다. 그랬다가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을 것 같지만……. 아니, 죽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지도 모르지만 꽤 곤란한 상황인 것은 맞았다. 라이오넬에게는 괜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자기 죽음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고 있는 이였다. 괜히 죽음에 대한 소재를 말해서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알버트는 잠시 그렇게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했고 라이오넬은 그러한 알버트 위로 말을 얹었다.

 

“좀 이상한 말이긴 했지만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어. 그러니까, 너는 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군.”

“…….”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은 그렇게 말하며 온실에서 축 늘어졌던 알버트를 눈에 담았다. 재빠르게 받아내지 않았다면 풀밭을 굴렀을 것이다. 보고 싶다던 예쁜 꽃은 장례식에 바치는 헌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에 겨우 매달려서 끌려오던 그것은 사람보다는 사체에 가까웠다. 라이오넬은 그때 알버트의 죽음의 무게가 이 정도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가 최후에 숨이 끊겨서 완전히 죽음에 이르게 되면 겨우 이정도의 무게가 남는 것은 아닐까 하고. 라이오넬은 그 생각을 하는 자체가 자신이 불안해한다는 사실의 증거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손을 꾹 쥐고 애써 자신을 가라앉히고 알버트를 방으로 끌고 들어왔었다.

창백한 안색과 죽을 것처럼 몰아쉬는 숨. 불안한 맥박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몸……. 모든 것이 정말 죽음을 앞둔 사람의 것과 다를 바가 없어서 라이오넬은 꽤 다급히 손을 놀렸었다. 열을 낮추기 위해 약을 처방했고, 계속 지켜보면서 진찰을 하고, 또…….

그러는 와중에 라이오넬은 말을 곱씹어 볼 수 있었다. 꽃을 보고 싶다고 말했던 말, 봄에 살고 싶었다던 말, 자기는 가장 행복할 때는 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 그 열에 오른 괴상한 말의 파편들은 결국 살아남고 싶다는 일종의 고백과 같았다.

라이오넬은 그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알 수가 없었다. 살고 싶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 기뻐했는지, 혹은 죽어가는 몸에 좌절했었는지. 라이오넬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말로는 부정하더니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고.”

“그건…….”

“걱정하지 말라더니, 죽을 거니까 감당할 필요 없다는 뜻이었군.”

“…….”

 

라이오넬은 대답도 하지 않는 알버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언제 죽어도 괜찮다는 듯이 굴었던 인간이 이렇게 성장하는 데 얼마나 걸렸었는지. 변화는 느닷없었지만 느닷없는 변화에 걸린 시간이 퍽 길었었다. 라이오넬은 그때 알버트의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살아있으니 변할 수 있는 거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리고 그는 알버트가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지, 동시에 보고 싶었다.

 

“알버트.”

“……응.”

“아까 그랬었지. 행복할 때 못 죽을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음.”

 

알버트는 가장 행복할 때 죽었으면 좋겠다고 고했던 그의 축복을 안고 살았었다. 알버트는 이제 그 말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더 행복한 삶을 살다가 후회 없이 눈을 감을 수 있길 바란다는 소중한 말. 얼핏 듣기에 살벌한 저주를 그가 무슨 마음을 담아 건넸는지 알버트는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말을 한 것은 지금의 네가 아니지만……. 알버트는 문득 그가 하지도 않은 말에 사과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떻게 말을 수습하지 고민하며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달싹이다가 알버트는 살짝 입을 벌렸다. 그건……. 그러나 알버트의 말이 소리가 되기도 전에 라이오넬의 소리가 빨랐다.

 

“왜 나에게 미안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미안하면 어떻게든 이루면 되잖아?”

“어?”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행복해져. 언제 죽어도 괜찮을 정도로 행복하게 살아. 다만 그래서 후회하면서 덜 행복해질 것 같다면…… 그 이유로 조금 더 살아가도록 해.”

“…….”

“언젠가 후회하게 되더라도 당장은 그러지 않도록 더 살라고.”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은 그렇게 말하며 알버트 윌프레드의 손을 잡았다. 여전히 열이 오른 손이 썩 기분 좋은 감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를 품은 것이었다. 라이오넬은 그 연약하기 짝이 없는 손을 꾹 잡은 채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네 목숨을 붙여놓을 테니 넌 살아가기만 해.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문득 알버트는 어둠에 시야가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내내 보이지 않던 라이오넬의 표정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손을 잡은 채 말하는 그 표정은 최근 자신이 보던 익숙한 표정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우울감과 불안을 녹여낸 어떤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라 결연이 담긴……. 알버트는 그것이 절망과는 다른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쉽게 죽을 거라고 확신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굳이 정의하자면……. 알버트는 잠시 적절한 글자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굳이 정의하자면……. 알버트는 단어를 추릴 수 있었다.

 

알버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라이오넬은 꼭 쥐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알버트의 손 위로 무언가를 하나 건네고 그 손바닥을 아예 꼭 주먹으로 쥐게끔 했다.

 

“……뭐야?”

느닷없이 손에 닿은 것은 차갑거나 따뜻한 것이 아니라 매우 가벼운 질감의 물건이었다. 어둠 속에서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작고 가벼운 것. 이게 뭐지? 알버트가 다소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라이오넬을 바라보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꽃.”

“꽃……?”

“그래, 살아서 맞고 싶다던 봄.”

 

선물로 줄게. 라이오넬은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알버트는 라이오넬의 소리에 천천히 손에 쥐었던 것을 펴서 내려다보았다. 꽃이라기엔 둥근 형태고 꼭 반지와 같은……. 알버트는 잠시 생각하다 그것이 꽃으로 만들어진 반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노란 꽃으로 만들어진 반지. 어린애나 만들 것 같은 작은 반지에 알버트는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반지를 조심스럽게 끼고는 그 손을 살짝 들어서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툭 소리를 냈다.

 

“……나 지금, 죽어야 할 것 같은데.”

아마도 가장 행복해서. 알버트의 목소리가 버석하게 말랐다. 잠긴 목소리로 답지 않은 농담을 하자 라이오넬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면서 타박했다.

 

“아직 아냐. 네 삶이 얼마나 남았는데.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 언제일 줄 알고 그런 말을 해?”

알버트는 라이오넬의 소리에 다시금 정의했던 단어를 떠올렸다.

 

결의가 담겼던 그 표정과 받은 봄……. 그것은 희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삶이었고, 이미 끊어질 뻔했던 삶을 운 좋게 연명 받아서 겨우겨우 이어나가는 덤과 같은 인생이었지만 어쩌면 정말 곁에 있던 사람들이 어떤 미래를 보는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기회를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알버트는 생각했다.

당장 기분이나 열에 취해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찰나의 기분이라도 괜찮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알버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자신이 받은 봄에 입을 맞추었다.

 

문득 반지에서 꽃의 향기가 났다.

어느새 봄이었다. 이미 봄이었다.

 

알버트 윌프레드는 그가 봄을 건넸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봄을 한껏 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도. 그는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삶을 탐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령 죽음이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체이 (@LAKekk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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